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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에서의 마이너리티

작성자

|

이상민

우리의 지질함이 때로는 좋은 강점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그려내는 인물이 그런 지질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거대서사, 과장된 캐릭터는 중국애국주의 영화에나 어울린다.

특히 한예종 입시와 같은 짧은 글을 쓸때는 과잉은 금물이다.

그런데 학생들을 보면 글을 쓸때 디테일하게 쓰는 것부터가 진행이 안된다.

수많은 학생들의 스토리텔링을 지도해보면 동일한 패턴이 발견된다.

일단 서사를 버릴 줄을 모른다.

무슨말이냐면

영화란 기본적으로 부분을 보여주는거지 전체를 보여주는게 아니다.

배리 젠킨스감독 <문라이트>의 장면들이나 리처드 링클레이터<보이후드>의 장면들을 생각해보라.

장면 장면은 지극히 디테일한 일상을 다루고 있지만

그 장면들이 연결될때 한 사람의 삶의 형체가 드러난다.

스토리가 무언가 소설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려야 한다.

현대적 추세는 그 반대다.

입시에서 앞뒤를 짜맞추려하니까

글이 장황해지고, 개념적이되고, 전체적이 된다.

 

작년 한예종 영화과 기출문제가 대표적이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장면을 현대 고등학교로 가지고올때 그 질투의 장면을 쓰는 문제가 출제되었을때 

많은 학생들이 당황한 이유도 

너무 서사적인 스토리텔링에 대한 강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예종 영화과 입시에서는 서사보다 캐릭터, 장면, 소재가 더 중요하다.

 

내가 서사가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게 아니다.

서사가 너무 중요한데

서사는 짜맞추는게 아니란 말을 하는거다.

서사는 인생에 대한 미메시스이다.

인생은 짜맞출수가 없다.

인생은 짜맞추어서 설계되는게 아니다.

인생은 '주요한' 장면들이 이끌어간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우리 삶은 줄거리로 표현되는가? 주요한 장면들로 표현되어지는가?

 

예술가는 바로 그 '장면'을 포착해야 한다.

 

장면과 장면과 장면이 이어지면

그 장면과 장면과 장면 사이의 빈틈. sub-text들이 서사의 무덤 한가운데서 일어나

생명을 얻는다.

 

서사는 쓰는게 아니다.

깨워 주는거다.

 

오랜 세월.

영겁의 세월속에 묻혀있던 서사의 생명을

작가는 깨워주는 것이다.

 

기억하라.

장면과 장면과 장면이 이어지면

그 장면들은 저절로 서사가 된다.

 

이 위대한 비약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자꾸 줄거리를 끼워맞추려고 하니까 글이 진부해지고, 장황해지고

말도안되는 반전이나 시도하고 그런다.

 

주의할 점은

그냥 무작정 장면과 장면이 이어진다고 스토리가 저절로 되는건 아니다.

이 장면들을 관통하는 작대기? 가 필요한데

(지금 닭꼬치 같은걸 연상하면서 글을 쓰고있음^^ 배고프네)

 

그 작대기에 해당하는게 바로 캐릭터. 즉 인물이다.

 

인물이 명확해야 디테일하고 살아있을수록

장면들은 더욱 더 긴밀하게 연결된다.

 

정확한 순서는

인물이 먼저고

그 다음이 공간

그리고 장면이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따위는 이제 버리자.

 

인물이 있고 공간이 있고 장면이 있으면 이들의 세계가 알아서 스토리를 소환해낸다.

 

여기서 중요한건

그냥 인물이 아니라

영화적 인물이어야하고

그냥 공간이 아니라

영화적 공간이어야하고

그냥 장면이 아니라

영화적 장면이어야 한다.

 

영화적인물이라는 건 

대부분 경계선 상에 있는 인물이다.

경계선 상에 있는 인물이란 말은

그 경계밖으로 떨어지면 몰락인데 지금 가까스로 마지막 선에 걸쳐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경계선상에 있는 인물은 가장 전형적으론

나홍진 <황해>의 구남? 을 생각하면 쉽다. 

절박하게 달려가야 하니

서사를 저절로 꿰어주는 인물이다.

 

김성훈감독 <끝까지간다>의 이선균을 생각해봐도 좋다.

절박하게 끝까지 달려가야 한다.

 

이렇게 캐릭터는 끝자락에 몰려있는 인물이 좋다.

 

우리를 끝자락까지 몰아넣는 건 주로 무엇일까?

 

가난이 대표적이다.

 

가난하니까 끝까지 몰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 헬조선 아래서 

처절한 청년들의 생존기 같은 소재는 언제나 옳다.

고시원을 무대로 삼으면 어떨까?

여러분 나이또래의 처절한 생존모습을 관찰하고

그걸 소재삼아 글을 써보라.

효과는 장담한다.

정말 여러분이 쓸 수 있는 아주 좋은 소재와 캐릭터 중 하나다.

 

이런 청년들의 생존기에 장르적 개성을 얹으면

조일형감독의 <#살아있다>와 같은 시나리오로 발전시킬 수도 있는거다.

 

가난과 동시에 또 우리 청년들의 삶을 경계선까지 몰아넣는 소재는

소외이다.

지질하고

소외받고

상처받는

그런 인간들을 등장시켜보자.

 

이런 완벽한 타인들이 궁극적으로 서로 소통하게 되는 이야기는 언제나 옳다.

여기에 유머까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이다.

 

입시에서, 면접에서도 그렇지만

스토리실기에서 유머가 갖는 힘을 여러분이 잘 모르는거같다.

정말 입시 비법이다.

그냥 장황한 글을 쓰려 하지말고

유머러스한 글을 쓰라.

멋진 글을 쓰려하지말고

감동을 주려고 하지도말고

힘든 현실을 살아가며

소외된 인간들이

소통하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감동을 준다.

랑그로 감동을 말하지말고

파롤로 감동을 말하는게 옳다.

 

감동을 쓰지마라

감동이 드러나게 쓰는게 맞다.

 

이해준감독 <김씨표류기>같은 영화야말로 이런 영화의 표본이다.

캐릭터, 공간, 장면, 대사 그 어느 것 하나 버릴게 없다.

 

우리는 마이너리티를 지향해야 한다.

거대서사를 당장 버려라.

지극히 관찰하라

주변을 둘러보면 모든게 스토리다.

이야기의 진짜 보물같은 소재는

우리 주변에 있다.

 

작은 관찰이 힘이 있다.

작은 세상에 대한 은유가 많은 사람들을 통해 전달될때는

마음속에선 거대한 이야기로 확장되어지니 말이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도 그렇고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도 좋은 예가 된다.

 

여러분이 SF나 마블영화와 같은 헐리우드식 서사를 생각하면서

그건 마이너리티가 아닌데요? 라고 생각한다면 잘못생각하는거다.

그건 장르와 자본 스케일의 문제일뿐

모든 관찰과 이야기의 개요는 동일하다.

 

나는 토트 필립스 감독의 <조커>를 보면서 이토록 핍진하고 마이너리티한 영화가 또 있을까 생각해봤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작은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작은 이야기, 작은 인물, 작은 공간부터

여러분의 주변에서 부터

가장 작게는

나 자신으로부터

 

스킨스쿠버가 물속을 자유롭게 탐험하며 오늘의 이야깃거리를 건져올리듯

스토리의 세계를 자유롭게 항해하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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